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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우리는 AI 음악에 거부감을 느끼는가

    2023년 컬럼비아대학교 연구팀이 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연구는 주목할 만한 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2,965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6개의 실험에서, 사람들은 완전히 동일한 예술 작품이라도 ‘AI가 만들었다’는 라벨이 붙으면 그 가치를 62%나 낮게 평가했습니다. 특히 ‘기술(skill)’과 ‘금전적 가치’ 차원에서 평가 하락이 두드러졌습니다. 더 눈에 띄는 점은, 대다수의 참가자들(70% 이상)이 라벨 없이는 AI 작품과 인간 작품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는 시각 예술에 관한 것이지만, 음악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AI 음악은 이미 인간의 귀로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해졌습니다. 그러나 ‘구별할 수 없음’과 ‘같은 가치를 느끼는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 연구가 시사하는 것은, 인간이 예술에서 찾는 것이 단순한 감각적 자극 이상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상’은 무엇일까요? 오래된 질문이지만, AI 예술 앞에서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작품 뒤에 아무도 없다

    예술이 소통이라는 관점은 새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통의 상대방 없이 생성된 예술이 등장하면서, 이 익숙한 전제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톨스토이는 1897년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예술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이 경험한 감정을 외적 기호를 통해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여, 그들도 그 감정을 경험하게 만드는 활동.”

    그에게 예술의 핵심 기능은 ‘감염(infectiousness)’이었습니다. 창작자의 감정이 수용자에게 전이되어 “영적 합일(spiritual union)”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에 따르면, 예술에 감염되는 능력이 없다면 사람들은 더 야만적이고, 더 분리되고, 서로에게 더 적대적일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예술은 단순한 감각적 쾌락의 생산이 아닙니다. 예술은 소통입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자신의 내면을 전달하고, 받는 이가 그것을 경험함으로써 둘 사이에 연결이 생기는 행위입니다.

    현대 심리학 연구는 톨스토이의 직관을 뒷받침하면서, 다른 층위를 조명합니다. 예일 대학의 George Newman과 Paul Bloom은 2012년 연구에서 사람들이 원본 예술 작품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두 가지 핵심 메커니즘을 밝혔습니다.

    첫째, 작품을 고유한 창작 행위(‘퍼포먼스’)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품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낸 행위에 가치를 둡니다. 같은 결과물이라도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면 품질과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합니다. Kruger 등의 연구(2004)는 이를 ‘노력 휴리스틱(effort heuristic)’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둘째, 원작자와의 물리적 접촉(‘전염, contagion’)이 전달하는 본질에 대한 믿음입니다. Newman과 Bloom에 따르면, 사람들은 사물이 창작자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믿으며, 이 믿음을 통해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의 연결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원본에 진정성을 부여합니다.

    톨스토이는 무엇이 전달되는가에 주목했습니다. 감정입니다. Newman과 Bloom은 누구로부터 전달되는가에 주목합니다. 창작자의 본질, 그 사람 자체입니다. AI 음악은 전자를 모방할 수 있습니다. 슬픈 멜로디, 격렬한 리듬, 그리움을 자아내는 화성. 그러나 후자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전달할 ‘누군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본 작품에 특별한 가치를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더 아름다워서가 아닙니다. 그 작품이 누군가의 손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의 무언가가 작품에 남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결에는 또 다른 축이 있습니다.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의 연결만이 아니라, 수용자들 사이의 연결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Robin Dunbar는 음악이 사회적 유대(social bonding)를 형성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합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음악 활동은 엔도르핀 방출을 통해 집단 구성원 간의 친밀감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우리가 콘서트장에서 수천 명과 함께 노래를 부를 때, 장례식에서 조용히 음악을 들을 때, 친구들과 함께 좋아하는 곡을 공유할 때 느끼는 것은 작곡가와의 연결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함께 듣는 사람들과의 연결이기도 합니다.

    음악의 진화적 가치는 단순히 청각적 쾌락이 아닙니다. 감정을 동기화하고, 공유된 경험을 통해 개인들을 연결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이 연결은 두 가지 축으로 작동합니다. 창작자에서 수용자로 흐르는 수직적 연결, 그리고 수용자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수평적 연결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AI 음악에 대한 거부감의 핵심이 드러납니다.

    AI 생성 음악 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고뇌도, 경험도,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수천 시간의 연습도, 수십 번의 수정도, 완성까지의 여정도 없이, 신경망이 패턴을 조합하여 뇌를 자극하는 음향 신호를 출력한 것입니다.

    발터 벤야민이 “아우라(aura)”라고 불렀던 것, “시간과 공간에서의 독특한 현존, 그것이 존재하는 장소에서의 유일한 실존”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말한 ‘감염’이 일어나려면 먼저 감염시킬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데, AI 음악에는 그 누군가가 없습니다.

    AI가 생성한 음향 신호가 우리의 청각 시스템을 자극하고, 즐거움이나 슬픔 같은 감정 반응을 유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통이 아닙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지 않습니다.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작곡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음악을 듣고도 감동받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낯선 곡에 눈물 흘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것은 연결 없이도 예술이 작동한다는 증거 아닐까요?

    그러나 이 경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누군가가 있다고 가정하며 듣습니다. 이름을 모를 뿐, 이 멜로디를 만든 사람이 있고, 그가 무언가를 전하려 했다고 무의식적으로 전제합니다. 컬럼비아대 연구가 보여준 것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동일한 작품도 ‘AI가 만들었다’는 정보가 주어지면 가치 평가가 달라집니다. 연결의 실제 존재가 아니라 연결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경험을 구성합니다.


    AI 예술이 받아들여지는 순간들

    그러나 연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AI 예술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 연결의 두 축은 각각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요?

    2019년, 전자음악 작곡가 Holly Herndon은 PROTO라는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스탠퍼드에서 머신러닝과 음악을 연구한 그녀는 ‘Spawn’이라는 AI를 직접 개발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를 학습해 새로운 보컬을 생성하는 시스템입니다. Herndon은 Spawn을 “도구”가 아닌 “아기”라고 불렀습니다. 앙상블과 함께 노래하게 하고, 전 세계 5만 명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훈련시켰습니다. 앨범에는 인간 합창단과 AI의 목소리가 섞여 있고, 어느 부분이 AI인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Herndon에게 구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전하고 싶었던 건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위협이 아니라 함께 창작하는 협력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앨범은 Pitchfork 선정 2019년 최고의 앨범 50에 올랐고, CNN은 Herndon을 “AI의 미래를 형성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소개했습니다. 이 사례에서 청자들이 연결된 대상은 AI의 출력물이 아닙니다. 그 뒤에서 비전을 제시하고 실현한 인간이었습니다.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의 연결, 첫 번째 축입니다.

    두 번째 축은 수용자들 사이의 연결입니다. 유튜브에서 현대 곡을 1950년대 재즈나 올드팝 스타일로 바꾼 AI 커버가 퍼지고, K-pop 아이돌 목소리로 팝송을 부르게 한 AI 커버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끄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 노래가 그 시대에 있었다면?”,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이 곡을 불렀다면?”이라는 상상을 함께 즐기는 경험입니다. 여기에는 특정 예술가의 고뇌나 철학이 없습니다. 그러나 공유된 맥락 속에서 수용자들이 서로 연결되는 AI 음악의 사례입니다.

    2024년 5월 발매된 컨트리 레전드 Randy Travis의 Where That Came From에서는 두 축이 함께 나타납니다. 2013년 뇌졸중으로 노래할 수 없게 된 그를 대신해, AI가 과거 녹음을 학습하여 그의 목소리로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사회에서 곡을 들은 이들은 눈물을 흘렸고, 그는 약 20년 만에 빌보드 컨트리 차트에 복귀했습니다. 이 곡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명확합니다. “빼앗긴 목소리를 되찾았다”는 서사와 본인의 참여가 창작자와의 연결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그의 복귀를 기다려온 팬들이 공유하는 감동의 맥락 속에서 수용자들 사이의 연결이 형성됩니다.

    공통점이 보입니다. 받아들여지는 AI 예술에는 창작자와의 연결이든, 수용자들 사이의 연결이든, 적어도 하나의 축이 살아 있습니다. 반면 스트리밍 플랫폼에 범람하는 익명의 AI 생성 트랙들, AI가 만들었음을 숨긴 채 인간의 창작물로 위장된 사례들이 거부감을 일으키는 이유는, 두 축 모두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신뢰의 문제

    AI 음악인지 사람의 음악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는 현상은 저작권이나 로열티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음악이 수행해온 사회적 기능, 소통과 관계의 창구로서의 역할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무의식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청각적 자극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누군가와의 연결입니다. 그 연결이 허구일 수 있다는 불신이 퍼지면, 음악이라는 매개체 자체에 대한 신뢰가 손상됩니다.

    이것이 AI 생성 음악이 제기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기술적으로 구별할 수 없는 음향 신호가 있을 때, 그것이 인간의 창작물인지 아닌지가 왜 중요한가? 우리가 예술에서 찾는 것이 정말로 감각적 쾌락뿐이라면, 그 구별은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술이 소통이라면, 그 구별은 본질적입니다.


    마치며: 건반 앞에서

    AI가 작곡을 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건 2016년 무렵이었습니다. AIVA, AI 작곡가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심볼릭 음악 생성 도구였습니다. 그 무렵부터 등장한 도구들(AIVA, Musia 같은)을 저는 작곡에 활용하며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주변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거부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저는 그것을 기술 수용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도구는 늘 저항을 받다가 결국 받아들여지니까요.

    2023년 말 Suno가, 이듬해 4월 Udio가 공개되었을 때 저는 열광했습니다. 텍스트 몇 줄로 보컬과 편곡이 완성된 곡이 쏟아져 나오는 경험. 직접 생성해서 듣고, 웃고, 감탄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범람하는 AI 생성물들을 보며 저도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여러 설명을 떠올려봤지만 어느 것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삶에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질 것 같을 때, 그러나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이 홀로 마주해야 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2025년이 그랬습니다.

    그 시기에 저는 건반 앞에 자주 앉았습니다. 아무 분석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건반을 두드려도, 그 시기의 무게가 나를 담은 정교한 구조를 완성시켰습니다. 그렇게 쌓인 작품들을 듣고, 또 다른 작품으로 뻗어나갔습니다. 나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되는 명상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끝에는 조금 더 단단해진 내가 있었습니다.

    그 작품들을, 어떤 인정도 바라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어딘가에 남기고 싶어졌습니다. 그 순간 직관이 찾아왔습니다.

    아무 스토리도 없는 AI 생성물은 마치 말도 통하지 않는 외계 존재의 문물과 같습니다. 경이롭지만, 그것과 직접 소통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새로운 존재 앞에서, 인간이 고뇌 속에서 빚어낸 것들의 가치가 더 선명해집니다. 결국 우리가 예술에서 찾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연결이었습니다.

    이 글은 그 직관을 검증하고 정리한 기록입니다.

    2025년 12월 17일, 김관용(Tolerance Kim)


    참고문헌

    학술 연구

    • Benjamin, W. (1936).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 Kruger, J., Wirtz, D., Van Boven, L., & Altermatt, T. W. (2004). The effort heuristic.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0(1), 91–98.
    • Newman, G. E., & Bloom, P. (2012). Art and authenticity: The importance of originals in judgments of value.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141(3), 558–569.
    • Horton Jr, C. B., White, M. W., & Iyengar, S. S. (2023). Bias against AI art can enhance perceptions of human creativity. Scientific Reports, 13, 19001.
    • Dunbar, R. I. M. (2023). The origins and function of musical performance. Frontiers in Psychology, 14, 1257390.
    • Tolstoy, L. (1897). Что такое искусство? [What Is Art?]. Moscow.

    미디어 및 보도자료